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고구려-수 전쟁 (문단 편집) == 여담 == * 598년에 [[백제]] [[위덕왕]]은 고구려를 견제하기 위해 [[수나라]]에 사신을 파견해 고구려가 예의 없고 오만한 나라라며 까고, 수나라가 고구려를 친다면 백제가 길 안내, 군량 보급 등을 협력하겠다고 제의했다. 허나 수나라는 당시에 그럴 여력이 없다 판단하여 위덕왕의 제의를 무시했다. 그리고 백제가 수나라 뒤를 봐주려고 접촉했다는 사실을 안 고구려는, 바로 백제로 진격하여 보복 공격했다. 이 고구려-백제 간의 598년 전투는 기록이 소략하고, 전면전이라기보단 고구려의 보복성 제스처인데다 고구려와 백제 사이에는 신라의 한강 하류 영토가 존재하기 때문에 수군을 이용해 소규모로 벌어졌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전쟁 결과는 나오지 않지만 백제가 방어해낸 것으로 보인다. 백제는 [[무왕(백제)|무왕]] 때도 국지모(國智牟)를 중국에 사신으로 보내서 수나라가 고구려를 공격하면 백제가 도울 것이라고 수양제를 부추겼는데, 백제의 부추김이 고구려 침략의 유일한 원인까지는 당연히 아니지만 결국 실제로 수나라가 고구려를 대규모로 공격하자 정작 무왕은 수나라를 돕지 않는 [[뒤통수]]를 쳤다. 애초부터 백제는 두 나라 간의 싸움에 직접 끼어들 생각은 없었고 서로 싸워서 고구려가 약해지면 그것대로 좋다는 식의 [[이이제이]]가 목적이었던 것. * 608년에는 고구려가 신라를 자주 침범하자 진평왕이 수나라에게 걸사표를 지어 도움을 청할 것을 명하자 수나라에 고구려를 공격하도록 요청하는 걸사표를 지었다.『삼국사기』에 의하면, 611년에 신라에서는 수나라에 사신을 파견하여 이 걸사표로써 군사를 청했고, 이에 수나라 양제(煬帝)는 100여 만의 대군을 이끌고 612년에 고구려를 침략하였다고 한다. * 인터넷 등지에서는 위의 백만 대군 관련 논란[* 당시의 중국의 국력이 아무리 세계 최강급이라도 실제 백만 대군을 동원할수 있겠느냐는 의구심에서 비롯된 논란을 뜻한다]을 농담조로 이렇게 설명하기도 한다. [[https://gall.dcinside.com/board/view/?id=europa&no=635881|#]] >'''합리적인 시각으로 꼬라박음을 평가하려고 하니까 안되는 거임''' > >"100만을 어떻게 전근대 국가가 보급하냐. 나라 망한다!" > >보급 했냐 → '''못했음''' >나라가 망한다 → '''망했음'''[* 감당이 안 되는 걸 억지로 동원했고 그로 인해 보급도 아작나고 나라도 망했다는 얘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